역사의 역사는 내게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다. 인간의 본성과 존재의

의미를 알게 되면, 시간이 지배하는

망강의 왕국에서 흔적도 없이 사그라질

온갖 덧없는 것들에 예전보다 덜

집착하게 될 것이라고 충고해 주었다.

역사에 남는 사람이 되려고 하기보다는

자기 스스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인생을 자신만의 색깔을 내면서

살아가라고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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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이해하고, 그녀 쪽으로 향하고,

나에게 와닿는 쪽에서만 그녀라는 사람을

사랑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와 직접

관련이 없는 모든 부분에 대해서도,

그러니까 그녀 자체의 모습, 그녀

혼자만의 모습에 대해서도 그녀를

사랑하는 것. 그러나 나는 이를 알지

못했고 그래서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

posted by 두대

결혼이 갖는 하나의 매력은, 결혼

당사자 양편 모두에게 기만의 삶이 필수

불가결해진다는 데 있지 않은가. 나는

내 아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고, 아내는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결코 알지

못해.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라면, (우리가 가끔 자리를 함께 할

때도 있긴 하네. 외식을 한다든가,

공작의 집에 갈 때지.) 우리는 가장

심각한 표정으로 가장 하찮은 이야기를

하곤 하네. 아내를 이런 일에 아주

능해. 실제로 나보다 훨씬 더 능하지.

내 아내는 밀회의 대상과 일정을

혼동하는 일이 거의 없지만, 나는 항상

혼동하니까. 하지만 내가 누굴 만나고

있는 걸 알아도 아내는 결코 싸움을

걸지 않네. 때로는 아내가 싸움을 걸어

주기를 원할 대도 있어. 하지만 아내는

그런 나를 비웃을 따름이야.

posted by 두대

어떤 신부가 있었다. 첫날밤, 유모가

신부를 신방으로 데려가려는데 신부가

한사코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것이었다.

억지로 신부를 들쳐 업고 신방 앞까지

간 유모는 급한 마음에 문고리가 아닌

문지도리를 계속해서 잡아당겼다. 그러니

아무리 당겨도 문이 열리기 만무했다.

겉으로 싫은 척하던 신부는 내심

답답하기 짝이 없어 결국 입을 열었다.

"문이 열려도 나는 절대 안 들어 갈

테야. 유모가 잡아당기는 게 문고리가

아니라 문지도리라도 말이야!"

posted by 두대

나는 보이지 않는 인간이다. 아니,

그렇지만 에드거 앨런 포를 사로잡은

유령이나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심령체

같은 존재라는 말은 아니다. 나는 살과

뼈가 있고, 섬유질과 체액으로

이루어진, 실체를 지닌 인간이다.

게다가 어쩌면 정신가지도 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나를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마치 서커스의 곁들이

프로그램에서 가끔씩 등장하는 몸뚱이

없는 머리들처럼, 실물을 왜곡해서 보여

주는 단단한 거울들로 둘러싸인 것

같다. 사람들은 내게 다가올 대 내

주변의 것이나 혹은 자신들의 상상

속에서 꾸며진 것만을 본다. 그야말로

그들은 모든 것을 빠짐없이 다 보면서도

정작 나의 진정한 모습은 보지 않는다.

posted by 두대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조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서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트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 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운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주어,


봄은 다 가고 - 동경 교회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아아 젊은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posted by 두대

우리를 사랑하는 긴 잎사귀 위에 가을은

당도했다.

그리고 보릿단 속에 든 생쥐에게도

우리 위에 있는 로우언나무 잎사귀는

노랗게 물들고

이슬 맺힌 야생 딸기도 노랗게 물들었다.


사랑이 시드는 계절이 우리에게 닥쳐와

지금 우리의 슬픔 영혼은 지치고 피곤하다.

우리 헤어지자, 정열의 계절이 우리를

저버리기 전에,

그대의 수그린 이마에 한번의 입맞춤과

눈물 한 방울을 남기고서



Autumn is over the long leaves that love us,

And over the mice in the barley sheaves;

Yellow the leaves of the rowan above us,

And yellow the wet wild-strawberry leaves,


The hour of the waning of love has beset us,

And weary and worn are our sad souls now;

Let us part, ere the season of passion forget us,

With a kiss and a tear on thy drooping brow.

posted by 두대

어쨌거나 도련님은 살인이 일어나리라는

걸 알고 계셨고 나한테 살인을 하라고

위임해 놓곤 정작 도련님 자신은 모든

걸 다 알면서도 떠나셨기 때문에 이

사건 전체에 있어 유죄입니다. 도련님은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늘 저녁 도련님의

눈앞에서 여기 이 사건 전체의 주범은

어디까지나 오직 도련님 한 분이라는

것을, 내가 죽이긴 했지만 나는 주범은

아니라는 것을 도련님한테 증명하고 싶은

겁니다. 바로 도련님이 그야말로 법적인

살인범이다, 이 말입니다!

posted by 두대

햇빛과 함게 봄이 오면

봉오리를 열고 꽃은 핀다.


달이 반짝이기 시작하면

ㄷ그 뒤로 별들이 나타난다.


황홀한 눈으로 시인이 바라보면

마음 밑바닥에서 노래가 용솟음친다.


그러나 벼롣 꽃도 노래도

눈도 달빛도 반짝이는 햇빛도


그것들이 아무리 욕심나는 것이라

할지라도

세상이 결코 주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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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소리 들은 높아졌다. 그러나 그

웃음 소리들이 사라지기 전에 김 첨지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하였다.


치삼은 어이없이 주정뱅이를 바라보며,

"금방 웃고 지랄을 하더니 우는 건 또

무슨 일인가."


김 첨지는 연해 코를 들여마시며,

"우리 마누라가 죽었다네."


"뭐, 마누라가 죽다니, 언제?"


"이놈아 언제는. 오늘이지."


"엑기 미친 놈, 거짓말 말아."


"거짓말은 왜, 참말로 죽었어,

참말로... 마누라 시체를 집어

뻐들쳐놓고 내가 술을 먹다니, 내가

죽일 놈이야, 죽일 놈이야."하고 김

첨지는 엉엉 소리를 내어 운다.


치삼은 흥이 조금 깨어지는 얼굴로,

"원 이 사람이, 참말을 하나 거짓말을

하나. 그러면 집으로 가세, 가."하고

우는 이의 팔을 잡아당기었다.


치삼의 끈느 손을 뿌리치더니 김 첨지는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싱그레 웃는다.


"죽기는 누가 죽어."하고 득의가 양양.


"죽기는 왜 죽어, 생때같이 살아만

있단다. 그 오라질 년이 밥을 죽이지.

인제 나한테 속았다."하고 어린애

모양으로 손뼉을 치며 웃는다.


"이 사람이 정말 미쳤단 말인가. 나도

아주먼네가 앓는단 말은

들었는데."하고, 치삼이도 어느 불안을

느끼는 듯이 김 첨지에게 또 돌아가라고

권하였다.


"안 죽었어, 안 죽었대도그래."


김 첨지는 ㅗ핫증을 내며 확신있게 소리를

질렀으되 그 소리엔 안 죽은 것을

믿으려고 애쓴느 가락이 있었다.기어이

일 원어치를 채워서 곱배기 한 잔식 더

먹고 나왔다. 궂은 비는 의연히

추적추적 내린다.

posted by 두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