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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石)문 - 조지훈

by Kieran_Han 2018. 11. 12.

당신의 손끝만 스쳐도 소리없이 열릴

돌문이 있습니다. 뭇 사람이 조바심치나

굳이 닫힌 이 돌문 안에는, 석벽난간

열두 층계 위에 검푸른 이끼가 앉았습니다.


당신이 오시는 날 까지는, 길이 꺼지지

않을 촛불 한자루도 간직하였습니다.

이는 당신의 그리운 얼굴이 이 희미한

불 앞에 어리울 때까지는 천 년이

지나도 눈 감지 않을 저의 슬픈 영혼의

모습입니다.


길숨한 속눈썹에 항시 어리운 이

두어방울 이슬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남긴 푸른 도포자락으로 이 눈썹을

씻으랍니까? 두 볼은 옛날 그대로

복사꽃 빛이지만 한숨에 절로 입술이

푸르러감을 어찌합니까?


몇 만리 굽이치는 강물을 건너와 당신의

따슨 손길이 저의 흰 목덜미를

어루만질때, 그때야 저는 자취도 없이

한줌 티끌로 사라지겠습니다. 어두운 밤

하늘 허공 중천에 바람처럼 사라지는

저의 옷자락은, 눈물어린 눈이 아니고는

보지 못하오리다.


여기 돌문이 있습니다.

원한도 사무칠 양이면 지극한 정성에

열리지 않을 돌문이 있습니다.

당신이 오셔서 다시 천년토록 앉아

기다리라고, 슬픈 비바람에 낡아가는

돌문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