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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7

운수좋은 날 - 현진건 웃음 소리 들은 높아졌다. 그러나 그웃음 소리들이 사라지기 전에 김 첨지는훌쩍훌쩍 울기 시작하였다. 치삼은 어이없이 주정뱅이를 바라보며,"금방 웃고 지랄을 하더니 우는 건 또무슨 일인가." 김 첨지는 연해 코를 들여마시며,"우리 마누라가 죽었다네." "뭐, 마누라가 죽다니, 언제?" "이놈아 언제는. 오늘이지." "엑기 미친 놈, 거짓말 말아." "거짓말은 왜, 참말로 죽었어,참말로... 마누라 시체를 집어뻐들쳐놓고 내가 술을 먹다니, 내가죽일 놈이야, 죽일 놈이야."하고 김첨지는 엉엉 소리를 내어 운다. 치삼은 흥이 조금 깨어지는 얼굴로,"원 이 사람이, 참말을 하나 거짓말을하나. 그러면 집으로 가세, 가."하고우는 이의 팔을 잡아당기었다. 치삼의 끈느 손을 뿌리치더니 김 첨지는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2018. 11. 13.
길 - 윤동주 잃어버렸습니다.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길에 나아갑니다. 도로가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길은 돌담을 기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쳐다보면 한르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담 저 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2018. 11. 13.
석(石)문 - 조지훈 당신의 손끝만 스쳐도 소리없이 열릴돌문이 있습니다. 뭇 사람이 조바심치나굳이 닫힌 이 돌문 안에는, 석벽난간열두 층계 위에 검푸른 이끼가 앉았습니다. 당신이 오시는 날 까지는, 길이 꺼지지않을 촛불 한자루도 간직하였습니다.이는 당신의 그리운 얼굴이 이 희미한불 앞에 어리울 때까지는 천 년이지나도 눈 감지 않을 저의 슬픈 영혼의모습입니다. 길숨한 속눈썹에 항시 어리운 이두어방울 이슬은 무엇입니까? 당신의남긴 푸른 도포자락으로 이 눈썹을씻으랍니까? 두 볼은 옛날 그대로복사꽃 빛이지만 한숨에 절로 입술이푸르러감을 어찌합니까? 몇 만리 굽이치는 강물을 건너와 당신의따슨 손길이 저의 흰 목덜미를어루만질때, 그때야 저는 자취도 없이한줌 티끌로 사라지겠습니다. 어두운 밤하늘 허공 중천에 바람처럼 사라지는저의 옷자락은.. 2018. 11. 12.
고민과 소설가 - 최민석 Essay 더 멋진 생각과 더 나은 자세가 발견되면,이전에 묶어둔 부표를 새 흐름에과감히 떠내려 보는 것,이게 바로 '좋은 어른이 되는 자세'입니다. 2018. 11. 12.
무기여, 잘 있거라 - Ernest Hermingway 내가 일선으로 다시 돌아왔을 대도 우리 부대는 여전히 그 읍에 머물렀다. 근처에는 대포가 매우 늘었으며, 봄이 돌아왔다. 들판에는 푸른 기운이 서서히 감돌았으며, 포도 덩굴에는 조그만 푸른 싹이 돋았고, 가로수에도 작은 잎이 달렸으며, 바다에서 훈풍이 불어왔다. 나는 구름이 있고 그 위에 옛 성이 있고, 그 너머로 산들이 둘러선 읍을 바라보았다. 산은 갈색이었으나 산허리에는 약간 푸른색도 있었다. 읍에는 대포가 더 많아졌고, 병원도 몇개 새로 생겼으며, 거리에서는 영국 남자나 간혹 여자를 만날 수 있었고, 집이 몇 채 더 포탄의 세례를 받은 것이 눈에 띄었다. 날씨가 따뜻하고 봄다워 벽에 비낀 햇살로 몸이 훈훈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수목 사이로 좁은 길을 걸어 내려가니까 우리 패들은 아직도 그전 집에 그대.. 2018. 11. 10.
지하로부터의 수기 - Фёдор Миха́йлович Достое́вский(Fyodor Dostoevsky) 누구든 사람은 오직 친구들이 아니면 아무한테나 털어놓지 못하는 추억이 있는 법이다. 친구들도 아닌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그것도 은밀히 털어놓을 수밖에 없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끝으로,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털어놓기 무서운 것들도 있는데, 점잖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것들이 상당히 많이 쌓여 있을 것이다. 2018. 11. 10.
노인과 바다 - Ernest Hermingway 이제 노인은 뱃전 너머로 낚싯대 세개가 물속에 잠기는 것을 지켜보면서 낚싯줄이 적당한 수심에서 위아래가 팽팽하게 당겨지도록 가만히 노를 저었다. 날이 상당히 훤해졌다. 이제 곧 해가 솟아 오를 것 같았다. 해가 희미하게 떠오르자, 바다 위에 떠 있는 다른 고깃배들이 보였다. 고깃배들은 대부분 멀이 해안 쪽 바다에서 조류를 가로질러 야트막하게 흩어져 있었다.날이 더욱 밝아지자 갑자기 눈부신햇빛이 물 위로 쏟아졌다. 잠시 후에 해가 선명하게 못ㅂ을 드러냈고, 잔잔한 수면이 해를 반사시켜 눈이 아팠다.노인은 물 위에서 시선을 거두며 천천히 노를 저었다. 노인은 가끔 물속을 내려다보았다. 어두운 물 속 깊이 곧게 낼뻗은 낚싯줄이 보였다. 그는 누구보다도 낚싯줄을 똑바로 드리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물 속.. 2018. 11. 10.
岩穴(암혈)의 노래 - 조지훈 야위면 야윌수록살찌는 혼(魂) 별과 달이 부서진샘물을 마신다. 젊음이 내게 준서릿발 칼을 맞고 創痍(창이)를 어루만지며내 홀로 쫓겨 왔으나 세상에 남은 보람이욓려 크기에 풀을 뜯으며나는 우노라 꿈이여 오늘도광야를 달리거라 깊은 산골에잎이 진다. 2018. 11. 10.
그대는 내게서 본다 (Sonnet LXXIII) - William Shakespeare 찬 바람에 흔들리는 저 나뭇가지에몇잎 누런 잎새 앙상한 계절을 그대는내게서 본다.엊그제 아름다운 새들 노래 했건만지금은 폐허된 성가당 또한 내게서 본다.만물을 휴식속에 감싸는 제 2의 죽음인,검은 밤이 서서이 데려가는 석양이서산에 파리하게 진 후의 황혼을 그대는내게서 본다.청춘을 키워준 열정에그만 활활 불타 죽음처럼 사그라진그 젊음의 잿더미속에 가물거리는청춘의 잔해를 내게서 보았거든,그대 날 사랑하는 마음 더욱 강해지거라.머지않아 그댄 내게서 떠나야 할사랑이거든. 2018. 11. 9.
노인과 바다 - Ernest Hemingway "할아버지가 저를 처음 배에 태워 주셨을 때 제가 몇 살이었었지요?" "아마 다섯 살이었지. 내가 그때 꽤 힘이 센 놈을 하나 잡아 올렸는데, 아 그놈이 배를 산산조각 낼 뻔했지. 너도 하마터면 죽을 뻔했었어. 생각나니?" "지금 기억나는 건 그놈이 꼬리를 철썩거리고 쿵쾅거리는 통에 가로대가 부러지고, 할아버지가 몽둥이로 그놈을 후려 갈기던 소리예요. 할아버지가 그때 저를 젖은 잒싯줄 사리가 있는 뱃머리로 던져 버리던 거며, 배 전체가 흔들리듯 요동치던 일, 그리고 마치 큰 나무를 찍어 넘기듯 몽둥이로 그놈을 내려치던 소리가 났었고, 이윽고 내 몸에서 들큰한 피비린내가 나던 것도 기억해요." "정말 그때 일을 다 기억하고 있는 거냐, 아니면 나중에 내가 이야기해 준거냐?" "우리가 함께 배를 타고 나갔던.. 2018. 11. 9.
Decameron 2 - Giovanni Boccaccio 에페제니아의 아름다움을 통해 치모네의가슴에 꽂힌 사랑의 화살은 어떤가르침도 받아들이지 못하던 그를 단번에다른 사람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2018. 11. 9.
천국보다 낯선 - 이장욱 나는 내 삶이 어떤 낙관적인 기분속에서 흘러가기를 희망한다.내가 속해 있는 세계가 뽀족한 공기를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나는 평행 우주의 다른 세계로 스며들고 싶었다.그런 우주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 때문에,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지푸라기나 동아줄을 붙잡는 심정으로.하지만 문장 속에서도 나는 자주 비관에 멱살이 잡혀 질질 끌려다니곤 했다.나에게 비관이라는 것은 어떤 정서의 이름이 아니다.그것은 어떤 물리적인 힘의 이름에 가깝다.내 멱살을 휘어잡고 패대기치는. 2018. 1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