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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서 쓴 수기 - Фёдор Михайлович Достоевский

by Kieran_Han 2021. 9. 13.

나의 설명을 들어보라.

쾌감이 찾아오는 시기는, 굴욕적인 자신의 존재를 잔인할 정도로 의식할 때였고, 막다른 벽에 부딪칠 때였고, 앞이 꽉 막혔는데 빠져나갈 탈출구가 딱히 없을 때였고, 탈출구가 없는 상태에서 다른 무엇이 되려야 도저히 될 수 없을 때였고, 무엇이든 다른 것이 되어보겠다는 믿음과 여유가 아직 남아 있다 해도 나 자신이 딴사람이 될 의향이 전혀 없을 때였고, 다른 무엇이 되길 바란다 하더라도 변신할 만한 대상이 실질적으로 전혀 없어서 그냥 두 손 놓고 멍하니 있을 때였다.

그런데 궁극적인 요체는, 강해진 의식의 기본법칙에 따라, 이 법칙에서 파생된 타성에 따라 그 모든 쾌감이 찾아오기 때문에 막상 어떠한 변신도 이루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의식이 강해지면 어떤 결과가 빚어질까?

자기가 진짜 비열하다고 느끼면 비열한 거싱 정당하다고 의식하는 것이다.

그것도 마치 비열한 인간을 괜찮다고 위로라도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