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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나를 사랑한다 - 임서영 상처를 똑바로 바라보지 않으면 어느 부분에 약을 발라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고개를 돌린 채로는 상처 부위에 정확히 약을 바를 수가 없으니 말이다. 상처를 똑바로 쳐다보고,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고, 상처에 대해 충분히 슬퍼하는 것은 상처 치유에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2021. 10. 15.
만든 눈물, 참은 눈물 - 이승우 가장 자발적인 것 같은 사랑의 고백이야말로 가용와 의무의 산물이라는 것을 그는 자기에게 이해시키려고 한다. 2021. 10. 15.
인간 실격 - 太宰 治 부끄러운 일이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2021. 10. 15.
운수 좋은 날 - 현진건 "이런 오라질 년, 주야장천(晝夜長川) 누워만 있으면 제일이야! 남편이 와도 일어나지를 못해," 라는 소리와 함께 발길로 누운 이의 다리를 몹시 찼다. 그러나 발길에 채이는 건 사람의 살이 아니고 나무등걸과 같은 느낌이 있었다. 이때에 빽빽 소리가 응아 소리로 변하였다. 개똥이가 물었던 젖을 빼어놓고 운다. 운대도 온 얼굴을 찡그려 붙여서, 운다는 표정을 할 뿐이다. 응아 소리도 입에서 나는 게 아니고 마치 뱃속에서 나는 듯하였다. 울다가 울다가 목도 잠겼고 또 울기운조차 시진한 것 같다. 발로 차도 그 보람이 없는 걸 보자 남편은 아내의 머리맡으로 달려들어 그야말로 까치집 같은 환자의 머리를 꺼들어 흔들며, "이 년아, 말을 해, 말을! 입이 붙었어, 이 오라질 년!" "···" "으응, 이것 봐, 아.. 2021. 10. 13.
상록수 - 심훈 어젯밤 비만 해도 보리에는 무던하다. 그만 갤 것이지 어이 이리 굳이 오노. 봄비는 찰지다는데 질어 어이 왔는가. 비 맞은 나뭇가지 새 움이 뾰죽뽀죽. 잔디 속잎이 파릇파릇 윤이 난다. 자네도 그 비를 맞어서 정이 치 나 자랐네. 이런 대 이런 경우에 동혁이가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면 '비 맞고 차아온 벗에게'라는, 조운(曺雲) 씨의 시조 두 장을 가만히 입 속으로 읊었으리라. 영신은 바라던 대로 바닷가 한가한 집에서 편안히 쉴 수가 있었다. 동혁이가 신문지로나마 도배를 말끔히 하고 자리까지 새 것을 깔아 놓고 저를 기다려 준 데는 무어라고 말이 나오지 않을 만치 고마웠다. 더구나 농우회원들은 비를 맞으며 갯고랑으로 나가서 낙지를 캐어 오는 사람에, 손 그물을 쳐서 새우를 잡아 오는 사람에 대접이 융숭.. 2021. 10. 13.
야성의 부름 - John Griffith London 차가운 지면 위로 첫발을 내딛자 벽의 발이 진흙처럼 부드럽고 흰 것에 빠졌다. 그는 펄쩍 뛰며 콧김을 내뿜었다. 흰 것들이 공중에서 더 많이 날리고 있었다. 그는 몸을 흔들었으나 흰 것은 그를 향해 계속 내려왔다. 그는 킁킁 냄새를 맡다가 혀에 대고 핥아보았다. 얼핏 불처럼 느껴졌으나 이내 그 맛이 사라졌다. 그는 갸우뚱했다. 다시 한 번 시도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와하며 웃음을 터뜨렸고 그는 이유를 몰랐지만 조금 창피했다. 그가 생전 처음 보는 눈이었다. 2021. 10. 13.
호수 - 이육사 내여 달리고 저운 마음이련마는 바람에 씻은 듯이 다시 명상하는 눈동자 때로 백조를 불러 휘날려 보기도 하건만 그만 기슭을 안고 돌아누워 흑흑 느끼는 밤 희미한 별 그림자를 씹어 놓이는 동안 자줏빛 안개 가벼운 명모같이 내려 씌운다. 2021. 10. 13.
화원에 꽃이 핀다 - 윤동주 나는 이 귀한 시간을 슬그머니 동무들을 떠나서 단 혼자 화원을 거닐 수 있습니다. 단 혼자 꽃들과 풀들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겠습니까. 참말 나는 온정으로 이들을 대할 수 있고 그들은 나를 웃음으로 맞아 줍니다. 그 웃음을 눈물로 대한다는 것은 나의 감상일까요. 고독, 정숙도 확실히 아름다운 것임에 틀림이 없으나, 여기에 또 서로 마음을 주는 동무가 있는 것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화원 속에 모인 동무들 중에, 집에 학비를 청구하는 편지를 쓰는 날 저녁이면 생각하고 생각하던 끝 겨우 몇 줄 써보낸다는 A군, 기뻐해야 할 서유(書留)(통칭(通稱) 월급봉투)를 받아든 손이 떨린다는 B군, 사랑을 위하여서는 밥맛을 잃고 잠을 잊어버린다는 C군, 사상적 당착에 자살을 기약.. 2021. 10. 8.
페스트 - Albert Camus 왜냐하면 그는 그 기쁨에 들떠 있는 군중이 모르는 사실,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021. 10. 8.
인연설 - 한용운 함께 영원히 있을 수 없음을 슬퍼 말고 잠시라도 같이 있을 수 없음을 노여워말고 이만큼 좋아해 주는 것에 만족하고 나만 애태운다고 원망 말고 애처롭기까지 한 사랑할 수 없음을 감사하고 주기만 하는 사랑이라 지치지 말고 더 많이 줄 수 없음을 아파하고 남과 함께 즐거워한다고 질투하지 말고 그의 기쁨이라 여겨 함께 기뻐할 줄 알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 일찍 포기하지 말고 깨끗한 사랑으로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나는 당신을 그렇게 사랑합니다. 2021. 10. 8.
산호새의 비밀 - 이태훈 거리는 아무런 일도 없는 듯 평온했고 사람들은 모두 즐거워 보였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 나와는 상관없이 모든 일이 잘 굴러갔따. 누가 죽거나 말거나 세상은 늘 적당한 평온을 유지했다. 2021. 10. 8.
딥 워크 - Calvin C. Newport 두뇌는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을 토대로 세계관을 형성한다. 그래서 암에 걸렸다는 사실에 집중하면 삶이 어둡고 불행해지지만 저녁에 즐기는 마티니에 집중하면 삶이 더욱 즐거워진다. 두 상황에서 주어진 여건이 같다고 해도 말이다. 2021. 10. 6.
어떤 눈 - 안리타@hollossi 눈에도 심리가 있어 어떤 눈은 마음을 읽고, 생을 들여다본다 어떤 눈은 감정을 느끼고 어떤 눈은 말을 걸고, 노래를 부른다. 꽃을 바라보는 눈은 아름답다. 향기를 맡는 눈은 더 아름답다. 「사라지는, 살아지는」 2021. 10. 6.
숱한 사람들 속을 헤집고 나왔어도 - 가랑비메이커@garangbimaker 으레 하고 싶던 말들은 언제나 앞보다는 뒤 붉어진 얼굴은 입을 꾹 다물었어도 등 뒤로 애먼 손끝은 늘 분주했잖아 조금만 천천히 따라와 주기를 내가 삼켜버린 마음까지도 당신이 읽어주기를 79p. 「당신보다 내 걸음이 빠른 이유」 2021. 10. 6.
두견 - 김영랑 울어 피를 뱉고 뱉은 피 도로 삼켜 평생을 원한과 슬픔에 지친 작은 새, 너는 너른 세상에 설움을 피로 새기러 오고, 네 눈물은 수천(數千) 세월을 끊임없이 흐려 놓았다. 여기는 먼 남(南)쪽 땅 너 쫓겨 숨음직한 외딴 곳, 달빛 너무도 황홀하여 호젓한 이 새벽을 송기한 네 울음 천(千) 길 바다 밑 고기를 놀래이고, 하늘가 어린 별들 버르르 떨리겠구나. 몇 해라 이 삼경(三更)에 빙빙 도는 눈물을 씻지는 못하고 고인 그대로 흘리웠느니, 서럽고 외롭고 여윈 이 몸은 퍼붓는 네 술잔에 그만 지늘꼈느니, 무섬증 드는 이 새벽까지 울리는 저승의 노래. 저기 성(城) 밑을 돌아나가는 죽음의 자랑 찬 소리여, 달빛 오히려 마음 어둘 저 흰 등 흐느껴 가신다. 오래 시들어 파리한 마음마저 가고지워라. 비탄의 넋이 .. 2021. 10.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