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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er Rising, 부활절 봉기

by Kieran_Han 2014. 5. 23.



 

Easter Rising 1916

부활절 봉기


 1916년 4월 24일은 아일랜드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19년 우리나라의 3.1운동이 있었던것과 유사하게, 아일랜드에서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항쟁이 있었습니다. 이 날은 아일랜드를 지배하고 있던 영국에 대항하는 무력항쟁이었고, 독립을 위한 염원이었습니다. 아일랜드 공화군인 IRB(아일랜드 공화주의 형제단)의 주도로 부활절 월요일부터 6일간 4월 30일까지 지속되었지만,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지켜내지 못하고 무너진 아일랜드의 슬픈 역사이기도 합니다.


 이 사건은 아일랜드의 독립 운동 중에서 1798년 '청년 아일랜드인 협회'의 항쟁 이후 가장 중요한 항쟁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주도 세력은 교사이자 변호사였던 패트릭 피어스가 이끈 아일랜드 의용군이었고, 좀 더 작은 규모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함으로써 진정한 자유를 바란 사회주의자 제임스 코놀리가 이끈 아일랜드 시민군도 연합작전을 펼쳤었습니다. 이들은 기습작전으로 더블린의 주요 거점을 점령하고 현재 더블린 신시가지의 가장 중심가인, O'Connell Street (오코넬 스트릿)에 있는 GPO가 임시정부로 사용되었으며, 이곳에서 아이랜드 사람들은 아일랜드의 독립을 선언하고 아일랜드 공화국을 선포하였으며, 부활절 선언은 더블린 중앙 우체국에서 패트릭 피어스가 낭독했습니다.


< Sackville Street >


 더블린 외에 아일랜드의 다른 지역에서도 봉기가 있었으나, 카운티 메스의 애쉬본을 제외하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부활절 봉기는 영국군에 의해 진압되었으며, 15명의 지도자들은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킬메인햄에 수감되고, 처형되었습니다. 지도자들의 처형으로 아일랜드 여론은 크게 분노하고 여론은 영국에 불리하게 돌아가 아일랜드 독립이 힘을 얻는 계기가 되어 봉기에서 선언된 '아일랜드 공화국'은 약 3년 후인 1919년 1월에 아일랜드 초대 의회에 의해 승인되며 다시 선언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