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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 Albert Camus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서 우리는 몸을 띄웠다. 하늘로 향한 얼굴 위에서 태양은 입으로 흘러드는 물의 장막을 걷어 주었다. 마송이 모래사장으로 나가서 햇볕을 쬐려고 눕는 것이 보였다. 멀리서도 그는 큼직하게 보였다. 마리는 나와 함께 헤엄을 치고 싶어 했다. 나는 뒤로 돌아가 마리의 허리를 붙잡고, 마리가 팡를 늘려 앞으로 나가는 것을 발로 물장구를 쳐서 도와주었다. 고요한 아침에 물을 때리는 나직한 소리가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고, 마침내 나는 지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마리를 남겨 두고, 숨을 크게 쉬면서 규칙적으로 헤엄을 쳐서 돌아왔다. 바닷가로 나와서 나는 마송 옆에 배를 깔고 엎드려 모래 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참 기분이 좋은데요." 했더니, 그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잠시 후에 마리가 왔.. 2021. 11. 17.
신이여, 저를 미치지 않게 하소서 - Александр Сергеевич Пушкин 신이여, 저를 미치지 않게 하소서. 아니, 그보다는 차라리 보따리와 지팡이가 나아요 아니, 고생스럽고 배고픈 게 차라리 더 나아요. 그것은 내가 나의 이성을 존중해서도 아니고 이성과 헤어지는 것이 기쁘지 않아서가 아니요. 나 자유로이 둔다면 그 얼마나 활개 치며 어두운 숲으로 달려가리! 열병에 걸린 것처럼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고 그 얼마나 자유로이 멋진 꿈에 도취되어 나를 잊으리. 그리고 나의 파도소리에 귀 기울이고 행복에 가득차서 빈 하늘을 바로버리니 나 그얼마나 힘차고 자유로우리 들판을 파헤치고 숲을 휘어뜨리는 회오리처럼. 그런데 불행히도: 미친다는 것은 페스트보다 더 두려운 일, 곧 갇히고 사슬에 묶이러니, 사람들은 창살 사이로 짐승을 찌르듯 찌르러 올 것이고, 그리고 밤에는 들을 것이다. 꾀꼬.. 2021. 11. 16.
무안만용 가르바니온 - dcdc 다시 냉장고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 언제부터인가 들리지도 않았는지 눈치도 채지 못했던 그 울음소리. 작은 원룸에 울음소리가 아주 하모니를 이루었다니까. 네가 떠나고 냉장고 정리했다. 둘이서 먹으려고 끓인 카레는 평소보다 두 배나 더 걸려서 해치워야 했으니까. 다행이었어. 너마저 없는데 카레라도 그쯤은 필요하긴 했거든. 아니. 역시 조금 모자랐을지도. 모르겠어. 2021. 11. 16.
나타날 현, 열매 실 - 프로젝트먹 오종길@choroggil.ohjonggil_meog 그들이 말하는 어른이 되지 못해 나는 오늘도 현실에 진입하지 못한 방랑자가 되었다. 분명 나의 현실에 충실하고 있음에도 내게 그것을 모른다한다. 그래서 내가 사는 현실은 현실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조차 않는 것이다. 작열하는 태양과 그곳에서 기인한 빛처럼 밝고 선명한 것만이 인정된다면 당당히 그곳을 향하는 내게서 점점 멀어지는 나의 모양새는 그저 미련이 남아 저리도 기다랗게 바닥에 누워있는가 보다. 나는 그림자만큼의 무게만 지고 또렷이 빛나는 태양빛에 따라 생겨나는 존재 아닌 존재. 해가 지고 떠오르며 맞이할 나의 무게여. 남루하지만 내가 걸친, 미약하지만 내가 짊어진 무게가 열매 맺는 아침이여. 「나는 보통의 삶을 사는 조금 특별한 사람이길 바랐다」 2021. 11. 16.
원통 안의 소녀 - 김초엽 사람들은 언제나 다정하고 친절하고 멀리 있었다. 이 도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햇볕을 머금은, 물기 어린, 비가 온 다음 날이면 곳곳이 반짝이며 빛나는··· 그녀를 위해 설계되지 않은 도시. 스무해 가까이 살았어도 그녀는 여전히 이곳의 여행자였다. 2021. 11. 16.
병에게 - 조지훈 어딜 가서 까맣게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도 내가 오래 시달리던 일손을 떼고 마악 안도의 숨을 돌릴려고 할 때면 그 때 자네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네 자네는 언제나 우울한 방문객 어두운 음계를 밟으며 불길한 그림자를 이끌고 오지만 자네는 나의 오랜 친구이기에 나는 자네를 잊고 있었던 그동안을 뉘우치게 되네 자네는 내게 휴식을 권하고 생의 외경을 가르치네 그러나 자네가 내 귀에 속삭이는 것은 마냥 허무,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자네의 그 나즉하고 무거운 음성을 듣는 것이 더없이 흐뭇하네 더운 내 이마를 짚어주는 자네 손은 내 손보다 뜨겁네 자네 여윈 이마의 주름살은 내 이마보다도 눈물겨웁네 나는 자네에게서 젊은 날의 초췌한 내 못브ㅓ을 보고 좀 더 성실하게 성실하게 하던 그날의 메아릴 듣는 것일세 생에의 미련.. 2021. 11. 8.
심은 버들 - 한용운 뜰앞에 버들을 심어 님의 말을 매렸더니 님은 가실 때에 버들을 꺾어 말채찍을 하였습니다. 버들마다 채찍이 되어서 님을 따르는 나의 말도 채칠가하였더니 남은 가지 천만사는 해마다 해마다 보낸 한을 잡아 맵니다. 2021. 11. 8.
Doktor Faustus 2 - Paul Thomas Mann 그러나 지금 세상에서는 경건하고 고지식한 방법으로는, 정당한 수단으로는 어떤 것도 만들어 낼 수 없으며, 아궁이에서 활활 타오르는 지옥의 불꽃이 없으면, 마귀의 도움이 없으면 예술이 불가능한 시대라는 걸 깨달았단 말입니다······. 친애하는 동료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술은 정체되고 난관에 부닥쳤습니다. 예술은 스스로를 비웃기 시작했습니다. 2021. 11. 8.
눈알팔이 소녀 - 바벨 자기 어머니도 그렇게 말씀 하셨지. 바다란 놈은 여인들을 거기에 순응하는 동시에 반항하게 만든다고 말이야. 2021. 11. 8.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 이병률 삿포로에 갈까요. 이 말은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2021. 11. 8.
이별행 열차 - 프로젝트먹 오종길@choroggil.ohjonggil_meog 이별, 그건 마치 가느다란 실 한 올 손목 어저리에 묶고서 상대와 반대 방향으로 멀어지는 것과 같다. 내 눈에만, 그것도 가끔씩만 보이는 이별의 오라기들은 손목과 발목, 허리와 목게 까지 많이도 묶여있다. 그많은 싵타래 엉킨 채 이제껏 걸어와 보니 이젠 우리 사이 더 멀어질 실이 조금도 남지 않아 너무도 팽팽해진 하나가 유달리 반짝여 보인다. 그렇다. 그 사람과 멀어진 거리가 아득해진 이제는 생채기 하나 정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이제 그 끈 끊어 버리려 한다. 중간 어디쯤에서 이미 끊어졌을지도 모를 한 올이지만 상관없다. 무생채를 깍두기 대신 곁들여 국밥한 그릇 비우면 될일이다. 내몸 어딘가에 끊어진 잔해는 묶인 채 남아있을, 별반 다름없는 헤어지는 일. 「나는 보통의 삶을 사는 조금 특별한 사람이.. 2021. 10. 18.
岩穴(암혈)의 노래 - 조지훈 야위면 야윌수록 살찌는 혼(魂) 별과 달이 부서진 샘물을 마신다. 젊음이 내게 준 서릿발 칼을 맞고 創痍(창이)를 어루만지며 내 홀로 쫓겨 왔으나 세상에 남은 보람이 오히려 크기에 풀을 뜯으며 나는 우노라 꿈이여 오늘도 광야를 달리거라 깊은 산골에 잎이 진다. 2021. 10. 18.
그대는 꽃인 양 - Christian Johann Heinrich Heine 그대는 흰송이 꽃처럼 귀여이 맑고 아름다워라. 내 그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슬픔은 저절로 가슴 속에 스미고 그대의 머리 위에 내 손을 얹어 빌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라. 하느님이 그대를 도와주기를, 맑고 귀엽고 아름다운 그대를. 2021. 10. 18.
어린 아들이 술을 마시다니 - 이규보 젖니도 갈지 않은 녀석이 벌써 술을 마시니 앞으로 창자가 썩을까 걱정이다. 네 아비가 취해 쓰러지는 건 배우지 마라 한평생 남들이 미치광이라 한단다. 한평생 몸 망친 게 오로지 술 때문인데 너조차 좋아할 건 또 무어냐. 삼백이라 이름 붙인 걸 이제야 뉘우치노니 아무래도 매일 삼백 잔씩 마실까 걱정이 된다. 2021. 10. 18.
뇌물 권하는 사회 - 이규보 내가 배를 타고 어떤 강을 건너 남쪽으로 갈 때의 일이다. 그때 바로 곁에서 나란히 가는 배 하나가 있었는데, 그 배는 내가 탄 배와 크기도 같고 뱃사공의 수도 같았으며 배에 탄 사람이나 말의 수도 거의 비슷하였다. 그런데 조금 뒤에 보니 그 배는 나는 듯이 달려 벌써 건너편 언덕에 닿았는데 내가 탄 배는 머뭇거리기만 하고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까닭을 물었더니 같은 배에 있던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저 배는 사공에게 술을 먹여서 사공이 힘을 다해 노를 저었기 때문이라오." 나는 부끄러운 마음이 없을 수 없어 탄식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것 참! 이렇게 조그만 배가 갈 때에도 뇌물을 주어야 빨리 앞어사고 뇌물이 없으면 미적미적 뒤처지는데, 하물며 벼슬자리르 ㄹ다투는 마당에서야 어떻겠.. 2021. 10.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