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에 흔들리는 저 나뭇가지에

몇잎 누런 잎새 앙상한 계절을 그대는

내게서 본다.

엊그제 아름다운 새들 노래 했건만

지금은 폐허된 성가당 또한 내게서 본다.

만물을 휴식속에 감싸는 제 2의 죽음인,

검은 밤이 서서이 데려가는 석양이

서산에 파리하게 진 후의 황혼을 그대는

내게서 본다.

청춘을 키워준 열정에

그만 활활 불타 죽음처럼 사그라진

그 젊음의 잿더미속에 가물거리는

청춘의 잔해를 내게서 보았거든,

그대 날 사랑하는 마음 더욱 강해지거라.

머지않아 그댄 내게서 떠나야 할

사랑이거든.

posted by 두대

"할아버지가 저를 처음 배에 태워 주셨을 때 제가 몇 살이었었지요?"


"아마 다섯 살이었지. 내가 그때 꽤 힘이 센 놈을 하나 잡아 올렸는데, 아 그놈이 배를 산산조각 낼 뻔했지. 너도 하마터면 죽을 뻔했었어. 생각나니?"


"지금 기억나는 건 그놈이 꼬리를 철썩거리고 쿵쾅거리는 통에 가로대가 부러지고, 할아버지가 몽둥이로 그놈을 후려 갈기던 소리예요. 할아버지가 그때 저를 젖은 잒싯줄 사리가 있는 뱃머리로 던져 버리던 거며, 배 전체가 흔들리듯 요동치던 일, 그리고 마치 큰 나무를 찍어 넘기듯 몽둥이로 그놈을 내려치던 소리가 났었고, 이윽고 내 몸에서 들큰한 피비린내가 나던 것도 기억해요."


"정말 그때 일을 다 기억하고 있는 거냐, 아니면 나중에 내가 이야기해 준거냐?"


"우리가 함께 배를 타고 나갔던 이후의 일은 무엇이나 다 기억하고 있는 걸요."

posted by 두대

에페제니아의 아름다움을 통해 치모네의

가슴에 꽂힌 사랑의 화살은 어떤

가르침도 받아들이지 못하던 그를 단번에

다른 사람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posted by 두대

나는 내 삶이 어떤 낙관적인 기분속에서 흘러가기를 희망한다.

내가 속해 있는 세계가 뽀족한 공기를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나는 평행 우주의 다른 세계로 스며들고 싶었다.

그런 우주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 때문에,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지푸라기나 동아줄을 붙잡는 심정으로.

하지만 문장 속에서도 나는 자주 비관에 멱살이 잡혀 질질 끌려다니곤 했다.

나에게 비관이라는 것은 어떤 정서의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물리적인 힘의 이름에 가깝다.

내 멱살을 휘어잡고 패대기치는.

posted by 두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