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낮의 평화는 아늑하지만 내겐 너무 이질적인 느낌. 내게 평화는 마음속을 굴러다니는 다면체라 닿는 면에 따라 부드럽다가도 거칠게 느껴진다. 나는 너무 많은 미래 때문에 순간의 평화를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 내일을 생각한다는 건 오늘의 저주. 낮 최고기온 24도의 따뜻함과 어울리는 분홍색 미풍, 갓 씻고 나와 풍기는 내 피부의 도브 비누 냄새, 골목길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소리. 이 모든 것의 행복감을 오감으로 느끼면서도 눈앞 하얀 꽃나무의 떨어지는 꽃잎을 보고는 머리로는 아름답다고 받아들이면서 속으로는 이런 문장을 조립한다.
하얗게 펑펑 우는 우리 집 앞 꽃나무 우리 서로 마주 보아 그런 건가 아니면 그냥 자신에 대한 슬픔인가
처음 봤을 때 그저 아름답다고만 생각했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진짜 궁금한게 그 사람의 슬픔인 것처럼 언제 가장 불행했어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자신의 가장 밑바닥의 모습은 무엇인가요?라고 물어봤던 것처럼. 나는 행복을 보고도 불행을 물어본다. 누군가의 슬픔을 가지는 것이 그 살마을 가진다는 것과 동일하다고 생각해서 그런건가.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들의 밑바닥과 슬픔을 점거하려 들었다. 나는 그 부분을 늘 채워주고 싶었다. 나에게는 채워지지 않는 구멍이 있었고 그것을 채울 수 없는 대신 남의 구멍을 최대한 막아주고 싶었다. 누구나 사랑하는 방법이 있다. 천국에도 그림자는 지고 슬픔도 사랑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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