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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견 - 김영랑

by Kieran_Han 2021. 10. 6.

울어 피를 뱉고 뱉은 피 도로 삼켜

평생을 원한과 슬픔에 지친 작은 새,

너는 너른 세상에 설움을 피로 새기러 오고,

네 눈물은 수천(數千) 세월을 끊임없이 흐려 놓았다.

여기는 먼 남(南)쪽 땅 너 쫓겨 숨음직한 외딴 곳,

달빛 너무도 황홀하여 호젓한 이 새벽을 송기한 네 울음 천(千) 길 바다 밑 고기를 놀래이고,

하늘가 어린 별들 버르르 떨리겠구나.

 

몇 해라 이 삼경(三更)에 빙빙 도는 눈물을 씻지는 못하고 고인 그대로 흘리웠느니,

서럽고 외롭고 여윈 이 몸은

퍼붓는 네 술잔에 그만 지늘꼈느니,

무섬증 드는 이 새벽까지 울리는 저승의 노래.

저기 성(城) 밑을 돌아나가는 죽음의 자랑 찬 소리여,

달빛 오히려 마음 어둘 저 흰 등 흐느껴 가신다.

오래 시들어 파리한 마음마저 가고지워라.

 

비탄의 넋이 붉은 마음만 낱낱 시들피느니

짙은 붐 옥 속 춘향이 아니 죽었을라듸야

옛날 왕궁(王宮)을 나신 나이 어린 임금이 산골에 홀로 우시다 너를 따라 가시었느니

고금도(古今島) 마주 보이는 남쪽

바닷가 한 많은 귀향길

천리 망아지 얼렁 소리 쇤 듯 멈추고

선비 여윈 얼굴 푸른 물에 띄웠을 제

네 한된 울음 죽음을 호려 불렀으리라.

 

너 아니 울어도 이 세상 서럽고 쓰린 것을

이른 봄 수풀이 초록빛 들어 풀 내음새 그윽하고

가는 댓잎에 초승달 매달려 애틋한 밝은 어둠을

너 몹시 안타까워 포실거리며 훗훗

목메었느니

아니 울고는 하마 지고 없으리, 오!

불행의 넋이여,

우거진 진달래 와직 지우는 이 삼경의 네 울음

희미한 줄 산(山)이 살풋 물러서고

조그만 시골이 흥청 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