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해태 한 개를 꺼내어 붙여 물고 다시 전찻길을 건너 개천가로 해서 올라갔다.
이제는 포켓 속에 남은 것이 꼭 삼 원하고 동전 몇 푼이다.
엊그제 겨울 외투를 사 원에 잡혀서 생긴 것이다.
방세와 전깃불값이 두 달 치나 밀렸다.
삼 원은 방세 한 달 치를 주고 일 원에서 전등삯 한 달 치를 주고도 싶었으나 그러고 나면 그 나머지로 설렁탕이나 호떡을 사먹어도 하루밖에는 못 지낸다.
그래 그대로 넣어 두고 한 이틀 지내는 동안에 일 원이 거진 달아났던 판인데 공연한 객기를 부리느라고 당치도 아니한 해태를 샀기 때문에 이제는 일 원 돈은 완전히 달아나고 삼 원만 남은 것이다.
P는 포켓 속에 손을 넣고 잔돈과 지폐를 섞어 삼 원 남은 돈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면서 왼편 손으로는 손가락을 꼽아 가며 삼 원을 곱쟁이 쳐보았다.
육 원 십이 원 이십사 원 사십팔 원 구십육 우너 백구십이 원 팔 원 모자라는 이백 원……
사백 원 팔백 원 일천육백 원 삼천이백 원 육천사백 원 일만이천팔백 원.
팔백 원은 떼어 버리고 이만사천 원 사맘팔천 원 구만육천 원 십구만이천 원 삼십팔만사천 원 칠십육만팔천 원 일백오십삼만육천 원……
삼 원을 열여덟 번만 곱집으면 일백오십만 원이 된다.
일백오십만 원 그놈이 있으면……
이렇게 생각하매 어깨가 으쓱해졌다.
삼 원의 열여덟 곱쟁이가 일백오십만 원이니 퍽 쉬운 것이다……
그놈만 있으면 백만 원을 들여서 오십 전짜리 십육 페이지 신문을 하나 했으면 우선 K사장의 엉엉 우는 꼴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쉬운 대로 십오만 원만 있어도,
일만 오천 원 아니 일천오백 원만 있어도,
아니 일백오십 원만 있어도,
십오 원만 있어도 우선 방세와 전등삯을 주고 한 달은 살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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