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선으로 다시 돌아왔을 대도 우리 부대는 여전히 그 읍에 머물렀다. 근처에는 대포가 매우 늘었으며, 봄이 돌아왔다. 들판에는 푸른 기운이 서서히 감돌았으며, 포도 덩굴에는 조그만 푸른 싹이 돋았고, 가로수에도 작은 잎이 달렸으며, 바다에서 훈풍이 불어왔다. 나는 구름이 있고 그 위에 옛 성이 있고, 그 너머로 산들이 둘러선 읍을 바라보았다. 산은 갈색이었으나 산허리에는 약간 푸른색도 있었다. 읍에는 대포가 더 많아졌고, 병원도 몇개 새로 생겼으며, 거리에서는 영국 남자나 간혹 여자를 만날 수 있었고, 집이 몇 채 더 포탄의 세례를 받은 것이 눈에 띄었다. 날씨가 따뜻하고 봄다워 벽에 비낀 햇살로 몸이 훈훈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수목 사이로 좁은 길을 걸어 내려가니까 우리 패들은 아직도 그전 집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고, 내가 떠날 대와 모든 것이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문이 열려 있고, 바깥 햇볓 아래 벤치에 군인이 한 명 앉아 있고, 옆문 곁에 앰뷸런스가 한 대 멈춰 있고, 문 안으로 들어서자 대리석 바닥과 병원 냄새가 풍겨왔다. 지금이 봄이라는 것 오ㅔ에는 내가 여기를 떠나던 때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큰 방문으로 들여다보니까 소령이 책상 앞에 앉아 있었고, 창이 열려 있고, 햇빛이 방 안에 가득했다. 그는 나를 보지 못했다. 나는 들어가서 신고를 할가, 먼저 이층으로 올라가서 세수를 할가를 두고 망설였다. 이층으로 먼저 올라가기로 했다.
'하나 > [ TEXT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석(石)문 - 조지훈 (0) | 2018.11.12 |
---|---|
고민과 소설가 - 최민석 Essay (0) | 2018.11.12 |
지하로부터의 수기 - Фёдор Миха́йлович Достое́вский(Fyodor Dostoevsky) (0) | 2018.11.10 |
노인과 바다 - Ernest Hermingway (0) | 2018.11.10 |
岩穴(암혈)의 노래 - 조지훈 (0) | 2018.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