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면 좋을까. 어찌하면 '천 원'을
얻어 불쌍한 영채 - 사랑하는 영채 - 은인의
따님 영채를 구원할까... 이럴까...
저럴까 하고 마음을 정치 못하면서 오후
한시에 안동 김장로의 집에 선형과
순애의 영어를 가르치러 갔다. 장로는
어디 출입하여 집에 없고 장로의 부인이
나와서 형식을 맞는다. 부인이 선형과
순애를 데리러 안에 들어간 뒤에 형식은
교실로 정한 모퉁이 방에 혼자 앉아 두
제자의 나오기를 기다린다. 방 한편
구석에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화상이
걸리고, 다른 한편에는 주인 김장로의
사진이 걸렸다. 아마 그 두사진을
꽃으로 장식함은 선형, 순애 양인의
솜씨인 듯 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로마 병정의 창으로 찔린
옆구리로서는 피가 흘러내린다. 그
고개가 왼쪽으로 기울어지고 그 눈은
하늘을 향하였다. 십자가 밑에는 치마
앞자락으로 낯을 가리고 우는 자도 있고
무심하게 구경하는 자도 있고 십자가
저편 옆에서는 병정들이 예수의 옷을
가지려고 제비뽑는 양을 그렸다. 형식은
물끄러미 이것을 보고 생각하였다.
십자가에 달린 자도 사람, 가시관을
씌우고 옆구리를 찌른 자도 사람, 그
밑에서 치맛자락으로 눈믈을 씻는 자나
무심하게 우두커니 구경하고 섰는 자도
사람, 저편에서 사람을 중겨 놓고 그
죽임받는 자의 옷을 저마다 가질 양으로
제비를 뽑는 자도 사람 - 모두 다 같은
사람이로다. 남라다 시마다 인생 세계에
일어나는 모든 희극 비극이 모두 다
같은 사람의 손으로 되는 것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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