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과 똑같은 일이 여기서도 행해졌다.
바로 이 결의가 채용된 것은 여러
사람의 의견이 일치했기 때문이 아니라.
첫째로는 그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서
사건 요약을 늘어놓은 재판장이 언제나
반드시 말하던 일, 즉 배심원들은 자문
사항에 답할 떄, '유죄임. 단,
살해할 의사는 없었음'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어먹고 주의시키지 않았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대령이 자기 처남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오랫동안
했으므로 모두가 지루했기 때문이었다.
셋째로는 네플류도프가 너무 흥분했기
때문에, '살해할 의사는 없었음'이란
단서가 빠진 것을 모르고, '절도할
의사는 없었음'이란 단서만으로도 기소를
무효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넷째로는 배심원장이 자문
질의 사항과 답신서를 낭독할 때,
표트르 게라시모비치가 밖에 나가서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는 모두들 지쳐
버려서 한시라도 빨리 자유롭게 되고
싶은 마음에서 빨리 결말이 날 듯한
결의에 찬성을 했기 때문이다.
배심원들은 벨을 눌렀다. 군도를 빼들고
문 앞에 서 있던 헌병은 칼을 칼집에
도로 넣고 옆으로 비켜섰다. 이윽고
재판관들이 자리에 앉자, 배심원들이 한
사람씩 들어왔다.
배심원장은 엄숙한 태도로 답신서를
가지고 있다가 쟆나장에게 가까이 가서
그것을 주었다. 재판장은 그것을 한 번
읽고 난 다음, 어이가 없다는 듯이 두
손을 벌리는 배석 판사들과 의논하기
시작했다. 재판장은 배심원들이 '절도할
의사는 없었음'이란 단서를 붙였으면서
'살해할 의사는 없었음'이란 단서는
붙이지 않았다는 데 놀랐던 것이다.
배심원의 결의에 의한다면, 마슬로바는
훔치지도 않았고 빼앗지도 않았으면서
이렇다 할 목적도 없이 사람을 독살한
결과가 되고 만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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