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나/[ TEXT ]

상록수 - 심훈

by Kieran_Han 2021. 10. 13.

어젯밤 비만 해도 보리에는 무던하다.

그만 갤 것이지 어이 이리 굳이 오노.

봄비는 찰지다는데 질어 어이 왔는가.

비 맞은 나뭇가지 새 움이 뾰죽뽀죽.

잔디 속잎이 파릇파릇 윤이 난다.

자네도 그 비를 맞어서 정이 치 나 자랐네.

이런 대 이런 경우에 동혁이가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면 '비 맞고 차아온 벗에게'라는, 조운(曺雲) 씨의 시조 두 장을 가만히 입 속으로 읊었으리라.

 

영신은 바라던 대로 바닷가 한가한 집에서 편안히 쉴 수가 있었다.

동혁이가 신문지로나마 도배를 말끔히 하고 자리까지 새 것을 깔아 놓고 저를 기다려 준 데는 무어라고 말이 나오지

않을 만치 고마웠다.

 

더구나 농우회원들은 비를 맞으며 갯고랑으로 나가서 낙지를 캐어 오는 사람에, 손 그물을 쳐서 새우를 잡아 오는 사람에 대접이 융숭하다.

그것도 못 하는 사람은 인제야 고추잎만한 시금치를 솎아 가지고 와서 몰래 주인 마누라를 주고 간다.

 

"경치두 좋지만, 우리 청석골보덤 인심두 여간 후하지 않군요."

'하나 > [ TEXT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간 실격 - 太宰 治  (0) 2021.10.15
운수 좋은 날 - 현진건  (0) 2021.10.13
야성의 부름 - John Griffith London  (0) 2021.10.13
호수 - 이육사  (0) 2021.10.13
화원에 꽃이 핀다 - 윤동주  (0) 2021.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