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비만 해도 보리에는 무던하다.
그만 갤 것이지 어이 이리 굳이 오노.
봄비는 찰지다는데 질어 어이 왔는가.
비 맞은 나뭇가지 새 움이 뾰죽뽀죽.
잔디 속잎이 파릇파릇 윤이 난다.
자네도 그 비를 맞어서 정이 치 나 자랐네.
이런 대 이런 경우에 동혁이가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면 '비 맞고 차아온 벗에게'라는, 조운(曺雲) 씨의 시조 두 장을 가만히 입 속으로 읊었으리라.
영신은 바라던 대로 바닷가 한가한 집에서 편안히 쉴 수가 있었다.
동혁이가 신문지로나마 도배를 말끔히 하고 자리까지 새 것을 깔아 놓고 저를 기다려 준 데는 무어라고 말이 나오지
않을 만치 고마웠다.
더구나 농우회원들은 비를 맞으며 갯고랑으로 나가서 낙지를 캐어 오는 사람에, 손 그물을 쳐서 새우를 잡아 오는 사람에 대접이 융숭하다.
그것도 못 하는 사람은 인제야 고추잎만한 시금치를 솎아 가지고 와서 몰래 주인 마누라를 주고 간다.
"경치두 좋지만, 우리 청석골보덤 인심두 여간 후하지 않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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