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생(許生)은 오늘도 아침부터 그 초라한 의관을 단정히 갖추고 단정히 서안 앞에 앉아 일심으로 글을 읽고 있다.
어제 아침을 멀건 죽 한 보시기로 때우고,
점심은 늘 없어왔거니와 저녁과 오늘 아침을 끓이지 못하였으니,
하루낫 하룻밤이요 꼬바기 세 끼를 굵은 참이었다.
그러니,
시장하긴들 조옴 시장하련마는,
굶기에 단련이 되어 그런지 글에 정신이 쏠리어 그런지,
혹은 참으며 내새을 아니하여 그러는지,
아뭏든 허생은 별로 시장하여 하는 빛이 없고,
글 읽는 소리도 한결같이 낭랑하다.
서울 남산 밑 묵적골이라고 하면,
가난하고 명색 없는 양반 나부랑이와 궁하고 불우한 선비와 이런 사람들만 모여 살기로 예로부터 이름난 동네였다.
집이라는 것은 열이면 열 다 쓰러져가는 오막살이 초가집이 몇해씩을 이엉을 덮지 못하여 지붕은 움푹움푹 골이 패이고, 비가 오면 철철 들이 새고 하였다.
서까래는 볼썽없이 드러나고, 벽은 무너지고 중방은 헐어지고 하였다.
사는 집이 그렇게 볼썽없는 것처럼,
사람들의 의표도 또한 궁기가 꾀죄죄 흘렀다.
갓은 파립이요,
옷은 웃옷 속옷 할것없이 조각보를 새기듯 기움질을 하였다.
여름에 가을살이를 입고,
겨울에 베옷을 입기가 예시였다.
신발은 진날이나 마른날이나 나막신이었다.
남산골 샌님에 나막신은 붙은 문자였다.
어느 집 할것없이 굶기를 먹듯 하였다.
하루 세 때는 고사하고,
하루한 때씩이라도 거르지 아니하고 굴뚝에서 연기가 오르는 집은,
일부러 찾고자 하여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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