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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TEXT ]336

그 후 - 나쓰메 소세키 그렇게 꼼짝 않고 있는 동안 두 사람은 오십 년이란 세월을 눈앞에 축소해 놓은 것 같은 정신적 긴장을 느꼈다. 그리고 그 긴장과 함께 두 사람이 서로 나란히 존재하고 있다는 자각을 잃지 않았다. 그들은 사랑의 형벌과 축복을 함께 받으며 동시에 그 두가지를 깊이 음미했다. 2021. 6. 2.
참회록 -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24년 1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2021. 5. 24.
사라지는, 살아지는 - 안리타@hollossi 당신의 그림이 좋았다. 그림 속의 나무가, 나무를 흔드는 바람이, 나는 그 그림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당신이 나를 물들이는 시간이 제일 좋았다. 이젤에 캠퍼스를 올려놓고선 내 이마 위로 타고 흐르는 정오의 빛줄기에 몯루하는 당신의 눈빛을 사랑했다. 골몰하는 미간이며 휘어진 등이며, 숨소리며, 견딜 수 없어서 달려가 껴 앉으면 말없이 웃는 그 침묵이 좋았다. 2021. 5. 24.
만든 눈물, 참은 눈물 - 이승우 왜 자기를 버리느냐고 매달리는, 영문을 알 리 없는 불쌍한 남자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싱겁고 심심해서 견딜 수가 없어. 하품이 나와. 연애가 이러면 안 되지." 2021. 5. 24.
캐빈 방정식 - 김초엽 최초의 글은 '울산에 관람차 있는 거 알아?'라는 한 카페의 게시글 이었고, 어느 순간부터 관람차에서의 심령 현상 목격담들이 줄을 이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대개는 꼭 울산 관람차를 붙이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보편적인 괴담들이었지만, 소문에는 하나의 일관된 규칙이 있었다. 그건 모든 사건이 관람차 정상에서 발생한다는 점이었다. 2021. 5. 21.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 백세희 회색에도 무수히 많고 다른 색이 있는데, 회색은 하나라고 단정 짓는 것 같아요 스펙트럼도 입체적일 수 있는데 일자로 보는 것 같고요. 2021. 5. 21.
태산이 높다하되 - 양사언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2021. 5. 21.
낙화 - 조지훈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가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가 저허하노니 꽃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2021. 5. 11.
폴픽 Polar Fix Project - 김병호 거대한 파랑, 거대한 생명, 지구와 서로 얼굴을 맞댈 때 가장 먼저 숨막히게 덮치는 느낌이다. 온 영혼을 꽉 채운 파랑 위에 잠시 아침 안개에 숨어서 낮게 호흡하던 호수 하나가 오버랩 되었다가 사라진다. 스페이스셔틀을 벗어나 지구와 서로 알몸으로 마주서면 다음은 이겨낼 수 없는 공포가 스며들었다. 2021. 5. 11.
커스터머 - 이종산 안을 처음 본 날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그때로 돌아가면 나는 안을보자마자 사랑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천천히 안의 모든 것을 아아가고 안을 알게 된 후에 안을 사랑할 것이다. 나는 안을 감싼 빛을 먼저 봤고 그 빛에 눈이 멀었다. 내 눈에는 항상 아닝 빛나 보이기만 해서 그애가 정말로 누구인지 영원히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내 눈을 멀게 한 빛을 걷어내고 진자 안을 보고 싶었다. 2021. 5. 11.
어느새 운동할 나이가 되었네요 - Mitsuyo Kakuta (角田 光代) 젊은과 새로움이 동의어가 아니듯,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사람이 저절로 어른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세월의 상처도 견뎌낼 수 있는 건강한 몸을 갖자. 튼튼한 몸에 튼튼한 마음이 깃들 수 있도록. 2021. 5. 3.
보통의 존재 - 이석원 나는 내가 본 아름다운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귀한 것. 오직 너에게만 보여주고 싶은 것. 2021. 5. 3.
일의 기술 - Jeff Goins 당신의 천직은 단일한 명작이 아니라 인생 전체라는 걸작이다. 한 편의 작품이 아니라 전작(全作)이다. 그것을 만들려면 평생이 걸린다. 따라서 너무 일찍 중단하거나, 인생 전체를 그 작업을 완수하는 수단으로 보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것을 놓칠 수 있다. 2021. 5. 3.
무한의 섬 - 정지돈 밤섬의 모습은 전과 다를 바 없었다. 다른 게 있다면 소리와 냄새였다. 바람 소리,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 새소리, 벌레 소리 등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땅속 깊은 곳에서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 창고에서 팬이 돌아가는 소리 같은 것이 희미한 진동과 함께 들렸다. 땅콩버터 냄새, 머리카락을 태우면 나는 냄새도 은은히 풍겼다. 냄새는 공기 중 어딘가에서 났다. 손을 뻗어 허공을 붙잡고 찢으면 너머의 공간에서 외계인이 요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일 것 같았다. 2021. 4. 29.
Everyday - David Levithan 사람들은 자기 몸이 지속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처럼, 사랑도 당연히 지속될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사랑에서 가장 좋은 것은 지속적인 만남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일단 그런 만남이 이루어지면, 그건 우리 삶에 추가된 또 하나의 토대가 된다. 그러나 그런 지속적인 만남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는 지탱 해줄토대는 늘 하나 뿐이다. 2021. 4.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