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TEXT ]336 내 나이 하나 하고 스물이었을 때 - Alfred Edward Housman 내 나이 하나 하고 스물이었을 때 어느 어진 이가 하는 말을 나는 들었다. 그러나 내 나이 하나 하고 스물이었으니 나에겐 소용없는 말이 되었지. 내 나이 하나 하고 스물이었을 때 또 그가 하는 말을 나는 들었다. 이제 내 나이 둘 하고 스물이 되니 오, 그것은 진실, 참다운 진실. 2021. 2. 9. 우리는 이별에 서툴러서 - 최은주 빛이 아니어도 된다. 지금과 다르기만 하면 된다. 쳇바퀴 밖으로 한 발 내디딜 수만 있으면 된다. 2021. 2. 9. 원고료 이백원 - 강경애 친애하는 동생 K야. 간번 너의 편지는 반갑게 받아 읽었다. 그리고 약해졌던 너의 몸도 다소 튼튼해짐을 알았다. 기쁘다. 무어니무어니해도 건강밖에 더 있느냐. K야 졸업기를 앞둔 너는 기쁨보다도 굎롬이 앞서고 희망보다는 낙망을 하게 된다고? 오냐 네 환경이 그러하니만큼 응당 그러하리라. 그러나 너는 그 괴롬과 낙망 가운데서 당연히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기쁘고 희망에 불타는 새로운 길을 발견해야 한다. K야 네가 물은 바 이 언니의 연애관과 내지 결혼관은 간단하게 문장으로 표현할만한 지식이 아직도 나는 부족하구나. 그러니 나는 요새 내가 지내는 생활 전부와 그 생활로부터 일어나는 나의 감정 전부를 아무 꾸밀 줄 모르는 서투른 문장으로 적어 놀 터이니 현명한 너는 거기서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하여다고.. 2021. 2. 3. 지하에서 쓴 수기 - Фёдор Миха́йлович Достое́вский 나의 설명을 들어보라. 쾌감이 찾아오는 기시는, 굴욕적인 자신의 존재를 잔인할 정도로 의식할 때였고, 막다른 벽에 부딪칠 때였고, 앞이 꽉 막혔는데 빠져나갈 탈출구가 딱히 없을 때였고, 탈출구가 없는 상태에서 다른 무엇이 되려야 도저히 될 수 없을 때였고, 무엇이든 다른 것이 되어보겠다는 믿음과 여유가 아직 남아 있다 해도 나 자신이 딴사람이 될 의향이 전혀 없을 때였고, 다른 무엇이 되길 바란다 하더라도 변신할 만한 대상이 실질적으로 전혀 없어서 그냥 두 손 놓고 멍하니 있을 때였다. 그런데 궁극적인 요체는, 강해진 의식의 기본법치에 따라, 이 법칙에서 파생된 타성에 따라 그 모든 쾌감이 찾아오기 대문에 막상 어떠한 변신도 이루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 2021. 2. 3. 숱한 사람들 속을 헤집고 나왔어도 - 가랑비메이커@garangbimaker 언제까지고 접싯물에서 수영할 수는 없는 법 언제까지나 침대만 밟고 설 수는 없는 법 덮쳐오는 파도에 비명도 질러봐야 소시를 내는 법을 알고 거친 땅을 맨발로 딛고서야 비로소 굳은 살이 밴다 무고한 얼굴로 그저 나는 몰라요, 라는 당신에게는 거울이 사라져야 한다 하루를 거울 속에서만 보내는 당신이 뚜벅뚜벅 찾아간 그의 삶에 기댈 궁리만 하는 당신이 야금야금 베어 먹던 그 하루는 거울 속에 잇지 않다 그의 단단해 보이는 어깨가 아무렇잖아 보이는 얼굴이 거울 밖에서 얼마나 자주 무너져 내리는지 당신은 알아야 한다 34p 「거울을 내다버려요」 2021. 2. 3. 북숍 스토리 - Jen Campbell 서점 결혼식 제리가 하는 일은 서점 운영만이 아니다. 결혼식 주례도 맡는다. "서점 안에서도 결혼식을 세 번 치렀어요. 마을의 모든 거눔ㄹ에서 종소리가 울렸죠. 백파이프 연주자들이 연주를 하고 모두 함께 파티를 즐겼어요. 감동적이었죠."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언젠가 결혼하게 되면 결혼식은 꼭 서점에서 올리겠다고 마음먹었다. 전에는 왜 미처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제리가 말했다. "온통 사랑 이야기로 가득한 곳에서 식을 올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맞는 말이다. 2021. 1. 27. 이방인 - Albert Camus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서 우리는 몸을 띄웠다. 하늘로 향한 얼굴 위에서 태양은 입으로 흘러드는 물의 장막을 걷어 주었다. 마송이 모래사장으로 나가서 햇볕을 쬐려고 눕는 것이 보였다. 멀리서도 그는 큼직하게 보였다. 마리는 나와 함께 헤엄을 치고 싶어 했다. 나는 뒤로 돌아가 마리의 허리를 붙잡고, 마리가 팔을 늘려 앞으로 나가는 것을 발로 물장구를 쳐서 도와주었다. 고요한 아침에 물을 때리는 나직한 소리가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고, 마침내 나는 지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마리를 남겨 두고, 숨을 크게 쉬면서 규칙적으로 헤엄을 쳐서 돌어왔다. 바닷가로 나와서 나는 마송 옆에 배를 깔고 엎드려 모래 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참 기분이 좋은데요." 했더니, 그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잠시 후에 마리가 왔.. 2021. 1. 27. 노인과 바다 - Ernest Miller Hemingway 나는 죄가 뭔지 잘 모르겠고 또 그런게 있다고 믿고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렇다라도 아마, 그 고기를 죽인 것은 죄가 될거야. 내가 살기 위해서, 또 여러 사람에게 먹이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죄일 것 같다. 그렇다면 무엇이든 죄가 아닌 게 없을 것이다. 아무튼 지금은 죄를 생각하지 말자. 이제와서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또 돈을 받고 그러한 일을 해주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런 사람들이나 그런 것에 대해 실컷 생각하라지. 고기가 고기로 태어난 것처럼 너는 어부가 되려고 태어난 거야. 성베드로도 디마지오의 아버지처럼 한때 어부였어. 노인은 자기에게 관련된 모든 일을 즐겨 생각했다. 노인에게는 읽을 것도 라디오도 없었기 때문에 자연히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으며, 죄에 대해서도 .. 2021. 1. 27. 지혜는 시간과 더불어 오다 - William Butler Yeats 잎은 많지만 뿌리는 하나, 내 청춘의 거짓된 허구한 나날을 햇빛 속에 잎과 꽃들을 흔들었지만 이제는 시들어 진실 속에 파묻히련다. 2021. 1. 27. 목늘어난 티셔츠가 지전분해 보이지 않는 이유 - 수수진@project158_ 일기예보 '시스템'을 한꺼번에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이성을 확 넘어서는 '비'의 존재감 2021. 1. 27. 허생전 - 채만식 허생(許生)은 오늘도 아침부터 그 초라한 의관을 단정히 갖추고 단정히 서안 앞에 앉아 일심으로 글을 읽고 있다. 어제 아침을 멀건 죽 한 보시기로 때우고, 점심은 늘 없어왔거니와 저녁과 오늘 아침을 끓이지 못하였으니, 하루낫 하룻밤이요 꼬바기 세 끼를 굵은 참이었다. 그러니, 시장하긴들 조옴 시장하련마는, 굶기에 단련이 되어 그런지 글에 정신이 쏠리어 그런지, 혹은 참으며 내새을 아니하여 그러는지, 아뭏든 허생은 별로 시장하여 하는 빛이 없고, 글 읽는 소리도 한결같이 낭랑하다. 서울 남산 밑 묵적골이라고 하면, 가난하고 명색 없는 양반 나부랑이와 궁하고 불우한 선비와 이런 사람들만 모여 살기로 예로부터 이름난 동네였다. 집이라는 것은 열이면 열 다 쓰러져가는 오막살이 초가집이 몇해씩을 이엉을 덮지 못하.. 2021. 1. 20. 이제, 글쓰기 - Jeff Goins 수많은 프로젝트를 가지고 있으면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두려움'이다. 끝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한 가지 일에 집중하다 그것을 끝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결과가 이상하게 나오면 어떡하지? 망치면 어떡해?' 두려움은 우리에게 잘못된 답을 제시하고 마치 세상이 끝날 것처럼 말한다. 곤란한 상황에 빠질 거라고, 시간을 낭비하는 짓이며,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다. 실제로 그 일들은 우리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성장하는 데 동력이 된다. 진실은 이것이다. "세상에 잘못된 것은 없다. 그러니 지금 시작하라." 2021. 1. 20. 엄마 밥 - 프로젝트먹 오종길@choroggil.ohjonggil_meog 주말이면 늦은 아침이나 이른 점심으로 제격인 아버지표 푸짐한 라면이 있었고, 생각나지 않는 어느 해 질 녘엔 그날의 저녁식사로 적격인 고소한 밤 냄새 더한 메뉴가 있었다. 반찬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먼지 잔뜩 낀 손 씻으며 맡던 그 냄새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케첩으로 웃는 얼굴 그린 후 아껴먹던 오므라이스도, 손가락 쪽쪽 빨아가며 먹던 LA갈비도, 간장소스 짭조름하게 밴 고등어 반찬이나 나물 반찬, 뜨끈한 국, 냄비째 놓인 찌개 같은 것 모두 어릴 적에만 맛보았던 것처럼, 저무는 해가 남긴 노을 마냥 기억 속에 아련하게 남아있다. 나는,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배불리 식사를 마치고 보고픈 얼굴들아- 「나는 보통의 삶을 사는 조금 특별한 사람이길 바랐다」 2021. 1. 20. 목늘어난 티셔츠가 지저분해 보이지 않는 이유 - 수수진@project158_ 나는 받을 것을 전제로 타인에게 베풀지 않기로했다. 부모님께 정말 죄송하지만 나는 축의금 없는 결혼을 할거고(결혼할 상대부터 찾는 게 먼저겠지만) 내가 받지 못하더라고 친구들에게 베풀 것이다. 그림도 그냥 그려줄 거고, 카드값 폭탄 맞아도 선물을 살 거다. 과연 물질과 함께 행복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물질이 많으면 행복한 걸까 물질이 없으면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일까. 나는 베풀기로 다짐하면서도 여전히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가득하다. 정말 솔직히 지금은 없어도 없어도 너무 없다. 하지만 돈을 벌 때도 여전히 부족했다. 적어도 이 고민을 통해 '돈'은 나의 결핍을 채울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그래서 남들과는 반대로 살기로 했다. 2021. 1. 20. 동백꽃 - 김유정 잔소리를 두루 늘어놓다가 남이 들을까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그 속에서 깔깔댄다. 별로 우스울 것도 없는데 날시가 풀리더니 이 놈의 계집애가 미쳤나 하고 의심하였다. 게다가 조금 뒤에는 제 집께를 할금 할금 돌아보더니 행주치마의 속으로 꼈던 바른손을 뽑아서 나의 턱밑으로 불쑥 내미는 것이다. 언제 구웠는 지 더운 김이 홱 끼치는 굵은 감자 세 개가 손에 뿌듯이 쥐였다. "느 집엔 이거 없지?" 하고 생색 있는 큰소리를 하고는 제가 준 것을 남이 알면은 큰일날 테니 여기서 얼른 먹어 버리란다. 그리고 또 하는 소리가, "너 봄 감자가 맛있단다." "난 감자 안 먹는다. 너나 먹어라."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일하던 손으로 그 감자를 도로 어깨 너머로 쑥 밀어 버렸다. 그랬더니 그래도 가는 기색이 없고,.. 2021. 1. 13. 이전 1 ··· 10 11 12 13 14 15 16 ··· 2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