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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TEXT ]336

레디메이드 인생 - 채만식 그는 해태 한 개를 꺼내어 붙여 물고 다시 전찻길을 건너 개천가로 해서 올라갔다. 이제는 포켓 속에 남은 것이 꼭 삼 원하고 동전 몇 푼이다. 엊그제 겨울 외투를 사 원에 잡혀서 생긴 것이다. 방세와 전깃불값이 두 달 치나 밀렸다. 삼 원은 방세 한 달 치를 주고 일 원에서 전등삯 한 달 치를 주고도 싶었으나 그러고 나면 그 나머지로 설렁탕이나 호떡을 사먹어도 하루밖에는 못 지낸다. 그래 그대로 넣어 두고 한 이틀 지내는 동안에 일 원이 거진 달아났던 판인데 공연한 객기를 부리느라고 당치도 아니한 해태를 샀기 때문에 이제는 일 원 돈은 완전히 달아나고 삼 원만 남은 것이다. P는 포켓 속에 손을 넣고 잔돈과 지폐를 섞어 삼 원 남은 돈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면서 왼편 손으로는 손가락을 꼽아 가며 삼 원을 .. 2021. 1. 13.
인생을 바꿔 주는 존스 할아버지의 낡은 여행 가방 - Andy Andrews 존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살지 않았따면 그게 희망의 증거가 아니고 뭐겠어요." 2021. 1. 13.
벨 아미(Bel Ami) - Guy de Maupassant "남자들에게 연애는 식욕 같은 것에 지나지 않지만, 제게는 반대로 일종의 뭐랄까…… 영혼의 일치 같은 거에요. 남자들의 생각과는 도저히 어울릴 수 없죠. 당신네들은 글자를 배열하는 것밖에는 모르지만, 전 그 정신을 알려고 해요." 2021. 1. 13.
상록수 - 심훈 오냐, 나는 비로소 한 사람의 동지를 얻었다! 내 사상의 친구를 찾았다! 하고 부르짖으며 저 혼자 감격하는 것이었다. 아직까지 고학을 하여 온 늙은 총각으로 이성과 접촉할 기회도 없었지만, 틈틈이 여러 가지 모양의 여성을 머릿속에 그려 보고 장래를 공상해 본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간담회 석상에서 채영신이란 여자를 한 번 보고 밤거리를 몇십 분 동안 같이 걸어 본 뒤에는, 눈앞에서 아른거리던 그 숱한 여자들의 그림자가 한꺼번에 화닥닥 흩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 대신으로 굵다란 말뚝처럼 동혁의 머릿속에 꽉 들어와 박힌 것은 '채영신' 하나뿐이다. '그날 무사히 들어가 잤냐? 학교서 말이나 듣지 않었냐?' 몹시 궁금은 하였건만, 규칙이 까다로운 여학교로 편지는 할 수 없었다. 그만한 용기야 못 낼 것이 아.. 2021. 1. 4.
부활 - Граф Лев Никола́евич Толсто́й 네플류도프는 이 사람과의 관계에서 언젠가는 치러야 할 모든 괴로운순간들을 상기했다. 언젠가 남편이 눈치채게 되었을 때의 결투를 각오하고, 그럴 때 자기는 허공에다 대고 총을 발사하겠다고 생각한 일과, 부인이 절망한 나머지 정원에 있는 연못에 몸을 던지려고 뛰쳐나간 것을 자기가 뒤쫓아가서 말리는 무서운 장면이 머리에 떠올랐다. '지금은 갈 수가 없다, 그녀로부터 회답을 받기 전까지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네플류도프는 번민했다. 그는 1주일 전에 그녀에게 자기 죄에 대한 대가로서 무엇이든 감수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며 '부인의 행복'을 위해서는 두 사람의 관계를 영원히 끊어 버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걸정적인 편지를 써서 보냈었다. 그러고는 그 회답을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으나 여지껏 아무런 .. 2021. 1. 4.
순수한 열망 - 강민경 아 순수한 열망이여 그대는 참으로 인내심이 없어 또다시 내 곁을 떠나가 자리를 비워두어 욕심이 또다시 그대 자리 차지하도록 기회를 준다 그럼에도 그대는 미련 없이 떠나가 한참을 부유하다 강박으로 지내는 날들로 지쳐 다음을 기약하는 일이 지쳐가는 나를 구제하러 예기치 못하게 찾아와 나를 떠오르게 만든다 「서든결의 언어」 2021. 1. 4.
일곱 박공의 집 - Nathaniel Hawthorne 그가 바로 한 발을 앞으로 내디뎠을 때 뭐라 표현할 수 없이 사납고 냉혹한 무언가가, 말하자면 그라는 인간 전체에서 시커멓게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핀천 판사를 알려면 바로 그 순간의 그를 보면 되었다. 그렇게 자신의 모습이 드러난 후에는 아무리 뜨거운 미소를 짓는다 해도 목격자의 기억에서 쇠로 낙인찍힌 인상을 녹여 없애기란 포도를 검붉게 익히고 호박을 노랗게 익히는 일보다 어려울 것이었다. 2021. 1. 4.
가지 않은 길 - Robert Lee Frost 노랗게 물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난 나그네 몸으로 두 길을 다 가볼 수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그곳에 서서 한쪽 길이 덤불 속으로 감돌아간 끝까지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쪽 길을 택했습니다. 먼저 길에 못지않게 아름답고 어쩌면 더 나은 듯도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밟은 흔적은 비슷했지만 풀이 더 무성하고 사람의 발길을 기다리는 듯해서였습니다. 그날 아침 두 길은 모두 아직 발자국에 더렵혀지지 않은 낙엽에 덮여 있었습니다. 먼저 길은 다른 날로 미루리라 생각했습니다. 길은 길로 이어지는 것이기에 다시 돌아오기 어려우리라 알고 있었지만. 먼먼 훗날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 쉬며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어 나는 사람이 덜 다닌 길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 2020. 12. 31.
1984 - George Orwell(Eric Arthur Blair) 일이년 후면 그 아이들은 이단의 낌새를 찾으려고 어머니를 밤낮으로 감시할 것이다.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아이들이 무섭다. 무엇보다도 끔찍한 것은 '스파이단'같은 조직이다. 스파이단은 제도적으로 아이들을 소야만인으로 개조하여 당의 강령에 조금이라도 반발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반발하기는 커녕 당과 당에 관계되는 것은 무엇이든 찬양하도록 만들어버린다. 군가, 행진, 깃발, 등산, 모의총 훈련, 슬로건 복창, 빅 브라더 숭배. 이런 것들은 그들에게 일종의 영광스러운 놀이였다. 아이들의 잔인성은 국가의 적과 외국인을 비롯하여 반역자, 파업자, 사상범에게 향하고 있었다. 서른 살 이상의 부모들이 자기 자식들을 두려워하는 것은 거의 보편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고자질하는 아이(이를 흔히 '꼬마 영웅'이.. 2020. 12. 31.
내 이름은 빨강 - Orhan Ferit Pamuk 수많은 고통을 마감한 나는 마음이 평안해졌다. 죽는다는 것은 두려워했던 것과는 달리, 고통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편안했다. 이 상태는 영원한 것이며, 살면서 느꼈던 모든 답답함은 찰나에 불과했다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이제 모든 것은 수세기 동안 영원히, 종말의 그날까지 이렇게 계속될 것이다. 그 상태가 불만스럽지도, 만족스럽지도 않다. 한때 내가 견뎌야 했던, 끊임없이 휘몰아쳤던 모든 사건들은 이제 무한한 공간으로 퍼져나갔으며, 동시에 그대로 거기 있었다. 2020. 12. 31.
감정의 물성 - 김초엽 의미는 맥락 속에서 부여된다. 하지만 때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담긴 눈물이 아니라 단지 눈물 그 자체가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2020. 12. 31.
살구 꽃처럼 - 김종한 살구 꽃처럼 살구 꽃처럼 전광 뉴쓰 대에 하늘거리는 전쟁은 살구 꽃처럼 만발했소 음악이 혈액처럼 흐르는 이 밤 살구 꽃처럼 살구 꽃처럼 흩날리는 낙하산부수 낙환들 꽃이 아니랴 쓸어 무삼 하리요 음악이 혈액처럼 흐르는 이 밤 청제비처럼 날아오는 총알에 맛받이로 정중선을 얻어맞고 살구꽃처럼, 불을 토하며 살구꽃처럼 떨어져가는 융커 기 음악은 혈액처럼 흐르는데, 달무리같은 달무리같은 나의 청춘과 마지노 선과의 관련, 말씀이죠? 제발 그것만은 묻지 말아주세요. 음악은 혈액처럼 흘려흘려, 고향 집에서 편지가 왔소 전주백지 속에 하늘거리는 살구꽃은 살구꽃은 전쟁처럼 만발했소 음악이 혈액처럼 스르는 이 밤 살구꽃처럼 차라리 웃으려오 음악이 혈액처럼 흐르는 이 밤 전쟁처럼 전쟁처럼 살구꽃이 만발했소 2020. 12. 29.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 村上春樹 "지금까지 나는 계속 내가 희생자라고만 생각했어. 이유도 없이 가혹한 짓을 당했다고 생각해왔어. 그 때문에 가슴에 깊은 상처를 입었고, 그 상처가 내 인생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비틀었다고. 솔직히 말해, 너희 넷을 원망하기도 했어. 왜 나 혼자만 이런 참혹한 꼴을 당해야 하느냐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을지도 몰라. 나는 희생자이기만 한게 아니라, 동시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위 살마들에게 상처를 줬을지도 몰라. 그리고 그 칼날이 나를 벤 건지도 몰라." 2020. 12. 29.
꿈과근심 - 한용운 밤 근심이 하 길기에 꿈도 길 줄 알았더니 님을 보러 가는 길에 반도 못가서 깨었구나 새벽 꿈이 하 짧기에 근심도 짧은 줄 알았더니 근심에서 근심으로 끝 간 데를 모르겠다. 만일 님에게도 꿈과 근심이 있거든 차라리 근심이 꿈되고 꿈이 근심되어라. 2020. 12. 29.
위대한 개츠비 - Francis Scott Key Fitzgerald 나는 뉴욕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활기에 넘치고 모험으로 가득한 밤의 분위기와 끊임없ㅇ디 명멸하는 남녀와 자동차들이 들떠 있는 눈동자에 안겨 주는 만족감이 마음에 들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5번가를 걸어 올라가 군중 속에서 낭만적인 여자들을 골라내 몇 분 안에 그들의 삶 속에 들어가는 상상을 하며 즐겼다.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눈치채거나 그러지 말라고 말리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마음속으로 보이지 않는 길모퉁이에 있는 아파트까지 그 여자들을 따라가 그들이 문을 열고 따듯한 어둠 속으로 사라지기 전에 뒤돌아서서 나를 향해 미소 짓는 못흡을 혼자 상상해 보기도 했다. 때때로 나는 마법에 걸린 듯한 대도시의 황혼 녘에 주체할 수 없는 고독감을 느꼈고, 사람들에게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가령 식당에서 외롭게 .. 2020. 12. 29.